내가 미국에 와서뿐만 아니라 내 생에 처음으로 구입한 주택은 미국에 온지 3년만인 1979년에 로스 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약 20마일 가량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카-슨이라는 시의 남쪽에 있는 3 베드룸 타운 하우스였다.

나는 이 타운하우스를 그때 당시 한국일보 스팟 광고에 “단돈 천불에 주택 구입!” 이라고 쓰여진 조그만 두줄 짜리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후 찾아가 위치를 확인 한 후, 그 중 한 채를 구입하였다.

그 타운 하우스 단지에는 600동의 주택이 들어서 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타운하우스 단지는 원래 1963년에 어느 건설회사가 미 해병대 장교 숙사로 지어서 임대하고 있었는데, 1965년 8월에 발발한 와츠 흑인 폭동 당시 흑인들이 총기를 들고 침입해 들어와 난동을 부리며 거주자를 죽여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집을 비우게 되었다.

그러자 흑인들이 몰려들어 와서 그 집들을 불법으로 점거하여 살아 오던 중, 유태인이 그 중 3백동의 주택을 헐값으로 구입하여 그 불법점거하고 있던 흑인들에게 렌트를 주어 왔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세 들어 있는 테난트들을 한집씩 차례로 강제로 퇴거 시킨 후, 그 집들을 수리하여 한국인에게 팔기 시작 하였다고 한다.

그 유태인 주인은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하여 한국일보에 매매광고를 내었는데, 그때 광고내용은 조그만 스팟 광고로 “단돈 천불에 주택구입!”이라고 쓴 후 전화번호만 나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판매가격은 아마도 1만 8천불 정도에서 시작하였는데 몇 개월이 지나면서 한국인들 사이에 입 소문으로 싼 주택이 나왔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많은 한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내가 그 주택을 구입할 당시에는 2만3천5백불로 많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가격이 많이 쌌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직장이 롱-비치에 있어서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주저 없이 그 주택을 샀다.

내가 입주한 후에도 한국인들이 계속 몰려 들어와서, 불과 1년 후에는 300동의 주택들이 모두 한국인의 소유로 변하게 되었으며, 가격도 껑충 뛰어 올라서 나는 내가 산 그 주택을 4만 5천불에 팔았다.

불과 1년 만에 약 2배 가량으로 가격이 올랐으며 그 전에 구입한 사람은 그 보다 더 많은 이득이 남게 된 셈이었다.

나는 1980년 그 집을 판 후, 마침 입학기가 된 아이들의 학교 교육 때문에 토렌스로 이사하였다.

토렌스의 국민학교 근처에 3 베드룸 2 배스 집을 12만5천불에 구입하였는데, 그때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은행 이자율을 시장 자유 경쟁체제로 그냥 놔두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시행 하므로서, 이자율이 10%도 넘게 껑충 뛰면서 그 어느 누구도 부동산 구입이 쉽지 않게 되어,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나도 겨우 11%의 이자율로, 그것도 5년 후 상환이라는 불안한 조건으로 어렵사리 융자를 얻어 집을 샀는데, 은행 이자율은 그 후에도 계속 상승하여 한때는 거의 20%선 까지 육박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그 후에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하여 한때는 내가 다운 페이한 2만 5천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꿋꿋하게 매달 11%라는 이자율의 페이먼트를 감당하고 버티면서 한 4-5년 정도 지나니까, 그 사이에 대통령도 바뀌고 경제정책도 바뀌면서 주택경기가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하여 주택가격도 오르게 되고 그때부터는 미국에서의 주택 소유주로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살만한 형편이 되었다.

다음주에는 카-슨의 타운 하우스 300여 동에 약 1200명의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있었던 해프닝을 소개할 예정이다.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렌스 지사 근무. 직통: 310)968-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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